감축은 했는데 돈이 안 된다면: 탄소배출권의 구조적 해법을 보라
탄소배출권은 한동안 친환경 경제의 핵심 자산처럼 여겨져 왔다.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만큼의 배출권이 발급되고, 이를 시장에 판매해 수익을 얻는 구조는 많은 기업과 지자체의 자발적 감축 노력을 유도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감축 사업을 실제로 추진해 본 이들은 곧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탄소는 줄였지만 정작 수익은 없다.
탄소배출권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
현행 배출권 제도는 ‘추가성(additionality)’을 핵심 요건으로 삼는다. 이미 의무화된 활동이나 일반적인 설비 개선은 배출권 발급 대상이 아니며, 반드시 새롭고 자발적인 감축이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많은 프로젝트가 제도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중단된다.
설령 추가성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감축량을 측정하고 보고·검증(MRV)하는 데 드는 행정비용은 수천만 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 원 내외로, 감축비용조차 회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유럽의 경우 한때 100유로를 넘기기도 했지만, 국제 정세나 시장 구조에 따라 가격은 크게 출렁인다. 시장에만 의존한 수익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회전 제한장치: 실효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대안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기술적 해법 중 하나가 차량용 공회전 제한장치다. 차량이 정차 상태에서 일정 시간 이상 공회전을 하면 자동으로 시동을 꺼주는 이 장치는, 화물차나 버스 등 도심 운행 차량에서 연료 낭비를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
공회전 제한장치는 감축량이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장착률이 낮아 추가성도 확보되며, 설치 즉시 연료비 절감이라는 부가 수익을 창출한다. 일본, 유럽 등에서는 이 장치를 활용해 자발적 탄소시장(VCM)에서 감축 실적을 등록·거래하며, ‘감축 + 수익’이라는 이중 효과를 실현하고 있다.
유가보조금, 역행하는 인센티브 구조
반면, 우리나라의 유가보조금 정책은 탄소 감축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화물차, 버스, 택시 등 운행거리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보조금을 받게 되는 구조는 연료 소비를 늘리고 간접적으로 탄소배출을 장려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제는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유가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공회전 제한장치 설치 보조금으로 전환하면 동일한 예산으로 탄소감축, 연료 절감, 배출권 확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할 때
공회전 제한장치는 그 자체로 우수한 감축 수단이지만, 제도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익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해법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접근이다.
① 민간 설치 + 공공 매입의 하이브리드 모델
민간이 자발적으로 장치를 설치하고 감축 실적을 쌓으면, 정부나 지자체가 이를 정해진 가격에 매입하고 소각(retirement)하는 방식이다. 민간은 수익 확보, 공공은 국가 감축 목표 이행이 가능하다.
② 일몰형 한시 보장제
전기차·수소차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배출권 매입을 보장해 초기 유인을 확보하고, 제도 종료 이후에는 의무화로 자연스럽게 전환한다. 재정의 예측 가능성과 정책 일관성 확보가 가능하다.
③ 배출권 가격의 하한 설정 (Price Floor)
배출권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최저가격을 보장하면, 민간 감축 참여를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공공의 적정가격 매입이 감축과 수익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3단 구조는 탄소배출권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고, 민간 감축 참여를 실질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선언이 아닌 설계로: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구조적 전환
이재명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와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통해 기후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은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감축, 수익, 제도, 시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실질적인 감축이 가능하다.
공회전 제한장치는 이미 기술적으로 성숙한 수단이며, 감축 효과가 명확하고, 예산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까지 확보되어 있다. 무엇보다 일몰형 정책으로 설계할 수 있어 재정 건전성과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탄소를 줄이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감축 실적이 실질적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후정의이며 탄소중립 정책의 출발점이다. 이제 선언을 넘어, 실행 가능한 정책 설계를 고민할 때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