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의식
매년 봄·겨울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기록할 때마다 국민의 불안감은 급격히 높아진다. 그러나 정치·행정의 우선순위에서 미세먼지 정책은 기후변화 정책보다 후순위로 밀려난 듯 보인다. 이상 기온, 폭염, 홍수 등 기후재난이 빈발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은 ‘글로벌 아젠다’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국민의 호흡기를 위협하는 미세먼지 문제는 ‘계절성 현안’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왜 이런 역전 현상이 벌어졌을까?
- 원인 분석
(1) 정책의 시야 차이 – 미래 대 현재
기후변화 정책은 지구 전체, 수십 년 후를 대상으로 한다. 탄소중립, 2050 목표 등 장기 로드맵이 국제사회와 연계돼 설계된다. 반면, 미세먼지는 당장 내일, 이번 주의 문제다. 국민이 직접 목격·체감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단기 대응’에만 집중되다 보니 국가 전략 차원에서의 종합 계획이 미흡해진다.
(2) 성과 측정의 구조 차이
기후변화 정책은 ETS(배출권거래제), DMRV(디지털 측정·보고·검증), CBAM(탄소국경조정제) 등 국제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제도가 있어, 감축량과 이행 성과가 ‘숫자’로 기록된다. ESG 공시 등 민간 영역에서도 평가·투자 기준으로 기능한다. 반면 미세먼지는 지역·시간대별 변동이 크고, 오염원별 기여도 측정이 복잡해 ‘성과 지표’ 설정이 쉽지 않다.
(3) 프리라이더(free-rider) 문제의 역설
기후변화 대응은 글로벌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한 국가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다른 국가의 감축 효과를 ‘무임승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협약·의무제를 통해 제도적 참여를 강제해 왔다. 미세먼지는 국경을 넘는 이동이 있지만, 대체로 ‘국내 관리 영역’으로 인식되어 국제적 강제력이 약하다. 이로 인해 재정·정책의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
(4) 국민 인식의 비대칭
국민 입장에서 “당장 내 건강과 안전”이 중요하지만, 미세먼지는 심리적으로 ‘피할 수 있는 위험’으로 여겨진다. 마스크 착용, 공기청정기 가동 등 개인적 회피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후변화는 개인 차원에서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오히려 국가·국제기구의 개입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역설을 만든다.
(5) 정책 방향의 왜곡 – 조기폐차 사례
대표적인 예가 조기폐차 정책이다. 노후 경유차를 조기폐차하면 단기적으로 배출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차량 생산·폐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와 미세먼지를 모두 고려하면 오히려 환경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순환경제와 탄소중립 시대에는 ‘생산-사용-폐기’ 전 주기(Life Cycle)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해야 하며, 단순한 교체보다 운행 효율화·저감장치 부착·연료전환이 장기적으로 더 친환경적일 수 있다.
- 제도 비교와 함의
구분 |
기후변화 정책 |
미세먼지 정책 |
국제 제도 | UNFCCC, 파리협정, ETS, CBAM, ESG 공시 등 강력한 글로벌 거버넌스 | 일부 국경 대기오염 협정 있으나 미흡, 국가별 자율 대응 |
성과 측정 | DMRV, 배출량 통계, 탄소 가격, 국제 보고 체계 | 지역별 측정망 존재, 그러나 기여도 분석·책임 추적 제한적 |
정책 지속성 | 장기 국가전략(2050 탄소중립) | 단기·계절성 대책 중심 |
민간 참여 | 기업의 ESG 전략·투자 연계 | 민간 참여·투자 유인 부족 |
- 제언 – 미세먼지를 ‘기후–환경 통합 정책’으로
첫째, 성과 지표의 국제 표준화가 필요하다. 미세먼지 감축도 DMRV 체계를 도입해, 오염원별 저감량을 수치화·인증하고 ETS·외부사업 연계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의 통합 관리가 요구된다. 노후차 개조, 산업 설비 개선 등은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을 동시에 줄인다. 특히 공회전제한장치 부착사업은 이 통합관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불필요한 연료 소비와 온실가스·미세먼지 배출을 동시에 줄이는 효과가 명확하다. 이러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
셋째, 국제협력과 외교 의제화를 강화해야 한다. 초미세먼지는 중국·몽골발 황사, 장거리 대기이동 영향이 크다. CBAM처럼 ‘국경 초미세먼지 조정 메커니즘’ 논의도 필요하다.
넷째, 국가 이익과 글로벌 책임의 균형을 설계해야 한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자국 산업·고용에 불리하다는 판단과 ‘자국 우선주의’ 때문이다. 한국은 당장 국민의 건강이익과 장기 글로벌 안정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미세먼지를 더 이상 홀대하는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 국민 건강과 안전은 기후변화 대응의 장기 목표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 의무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정책을 동일한 위상에서 설계하고, 통합적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