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율은 겉보기에 경제학의 기술적 변수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의 삶과 위험을 얼마나 중대하게 평가할 것인가를 수치로 드러낸 판단 기준이다. 할인율이 높게 설정되면 미래의 피해는 현재 시점에서 작게 평가되고, 반대로 낮게 설정되면 미래의 고통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점에서 할인율은 탄소중립 정책의 속도를 앞당길지, 아니면 늦출지를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정책 레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경제학의 현재가치 계산을 통해 구체화 된다. 미래에 발생할 가치나 피해(FV)는 할인율(r)과 시간(t)을 고려해 PV = FV / (1 + r)^t로 환산된다. 이 수식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한 미래 피해라도 할인율이 높을수록 현재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를 기후위기 대응에 적용해 보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10년 후 어느 항만도시에서 침수 피해 100억 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방재 인프라를 구축하여 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해당 정책의 편익은 미래에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회피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선택된 할인율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연 5%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10년 뒤 100억 원의 피해는 현재 가치로 약 61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계산하에서는 정부가 61억 원을 넘는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게 되어, 대응은 쉽게 유보된다. 반대로 연 1%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같은 미래 피해의 현재 가치는 약 90억 원으로 평가되며, 조기 투자와 적극적 정책 개입이 합리적 선택으로 도출된다.
결국 할인율은 단순한 계산상의 숫자가 아니라, 미래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불확실성과 세대 간 책임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경제학적 세계관을 함축한다. 이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해 온 대표적 인물들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니콜러스 스턴, 그리고 마틴 와이츠만의 주장을 들어보자.
먼저,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시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는 시장 금리와 투자 수익률을 반영하여 연 3~4% 수준의 비교적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미래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부유할 것이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현재 세대가 부유한 미래 세대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후 대응 비용은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의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며, 초기에는 낮은 탄소세로 시작해 경제 성장에 맞춰 서서히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점진적 대응(Climate Policy Ramp)’이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즉 충격 없이 아주 완만하게 서서히 올라가는 Ramp 길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시스템 내포한 ‘살찐 꼬리(fat tail)’ 위험에 주목
반면, 2006년 기념비적인 ‘스턴 보고서’를 펴낸 니콜러스 스턴(Nicholas Stern) 경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인 그는 기후변화를 단순한 투자의 문제가 아닌 ‘윤리적 계약’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단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래 세대의 행복을 할인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역설하며, 연 1.4% 수준의 매우 낮은 할인율을 적용했다. 미래의 가치를 현재와 거의 대등하게 평가하자, 기후변화의 피해액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산출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파국을 막기 위해 전 세계 GDP의 약 1~2%에 달하는 비용을 지금 당장 투자하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행동’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환경경제학계의 석학인 마틴 와이츠만(Martin Weitzman)은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며 기존 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했다. 그는 단순한 할인율 수준의 비교를 넘어, 기후 시스템이 내포한 이른바 ‘살찐 꼬리(fat tail)’ 위험에 주목했다.
통계학의 일반적인 정규분포(종 모양 곡선)에서는 양 끝으로 갈수록 발생 확률이 0에 가깝게 줄어드는 ‘얇은 꼬리(thin tail)’를 보인다. 마치 키가 3미터인 사람이 존재할 확률이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는 기후변화의 확률 곡선은 이 꼬리 부분이 바닥에 닿지 않고 두툼하게 살찐 것처럼 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0’이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실재한다는 뜻이다. 즉 과거 데이터에 의존한 일반적인 경제 모델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파국적 재난 확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와이츠만은 예를 들어 지구 온도가 6도 이상 상승하여 문명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꼬리 위험’은 비록 발생 확률이 낮더라도 그 피해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했다. 파멸 앞에서는 비용-편익 분석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그는 기후 정책을 효율성의 관점이 아니라, 파국을 막기 위한 ‘보험(Insurance)’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결론적으로 스턴의 강력한 조기 대응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편 이러한 이론적 논쟁은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와 정책을 뒤흔들기도 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노드하우스의 논리를 빌려 3~7%의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고, 그 결과 ‘사회적 탄소 비용(SCC, Social Cost of Carbon)’을 낮게 산출하여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정당화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스턴의 윤리적 접근을 받아들여 2.5~3% 내외의 낮은 할인율을 채택했다. 이는 대규모 친환경 투자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의 강력한 경제적 근거가 되었다.
결국 할인율은 살펴본 것처럼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현 세대의 탐욕과 미래 세대의 생존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기후 위기의 시계가 빨라지고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경고음이 커지는 지금, 세계의 지성은 점진적인 노드하우스의 해법보다는 스턴과 와이츠만의 강력한 행동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미래가 파국적인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안일한 경제 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탄소중립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할인율은 미래를 위한 책임의 숫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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