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정 복영

  • 강의(2)-탄소중립을 향한 사다리와 낮게 달린 과일(low-hanging fruit)

    강의(2)-탄소중립을 향한 사다리와 낮게 달린 과일(low-hanging fruit)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종종 언급되는 것이 ‘탄소세(carbon tax)’와 같은 가격 기반의 시장 수단이다. 이들 정책은 오염자에게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비용효율적인 감축 경로를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론적으로,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효율적인 감축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탄소중립이라는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한가?

     

    앤서니 팻과 요한 릴리스탐(Anthony Patt와 Johan Lilliestam)은 2018년 Joule에 발표한 글에서, 탄소세의 한계를 ‘낮게 달린 과일(low-hanging fruit)’이라는 은유로 설명한다. 그들은 탄소세가 단기적으로 감축 비용이 낮은 분야—예컨대 에너지 효율 개선, 산업 공정 최적화 등—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고비용 감축 영역—예컨대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탈내연기관 자동차 산업 전환, 저탄소 철강 생산—에서는 역부족임을 지적한다. 탄소세는 “낮은 곳에 달린 과일”을 따게 만들 수 있지만, 나무 위에 있는 모든 사과를 따기 위해서는 “사다리”라는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다리는 규제, 산업정책, 공공 투자, 기술 보조금, 교육과 노동 전환 지원 같은 다양한 정책 수단을 의미한다.

     

    탄소세가 지닌 이론적 우아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에너지 시스템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단일한 가격 신호만으로는 기술 전환이나 사회적 재편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일은 단순히 석탄의 가격을 올리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이는 장기적인 송배전망 재설계, 신기술에 대한 초기 시장 창출, 기존 산업 노동자의 직무 전환 등 광범위한 공공정책 개입을 필요로 한다.

     

    또한 탄소세는 사회적 수용성의 측면에서도 한계를 가진다. 세금은 소비자와 산업계에 즉각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그 분배적 영향이 불평등할 경우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와 같은 이유로,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탄소세 도입은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거나 시행 후 축소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비용효율성’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것은 탄소 감축을 ‘시장 실패 교정’이라는 협소한 틀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경제적 전환을 유도하는 ‘전략적 정부 역할’로 인식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단기적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도전이다. 앤서니 팻과 요한 릴리스탐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낮게 달린 과일만을 탐할 수 없는 시대에 있다. 모든 과일을 따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반드시 사다리를 준비해야 하며, 이 사다리는 정치적 용기, 제도적 역량, 사회적 연대에 의해 세워질 수 있다. 탄소중립은 기술만이 아니라, 의지와 상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 사다리를 설계하고, 함께 올라야 할 시간이다.

     

  • 강의(1)-나의 탄소이야기

    강의(1)-나의 탄소이야기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이제 뉴스나 정책 발표에서 자주 들리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나 국가 전략 차원에서만 다루어져야 할 대상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그리고 과거의 삶 속에도 탄소중립의 씨앗은 이미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장독에 장을 담근 뒤 아버지가 만든 숯을 장독 안에 띄우셨다. 숯은 잘 가라앉지 않고 장 속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해 맛을 오래도록 유지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때는 그저 장맛을 지키기 위한 옛 지혜라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숯은 탄소중립의 원리를 품고 있었다.

     

    아버지는 종종 소죽을 끓일 때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태우다가, 일정 시점에 불길을 막고 아궁이를 닫아 숯을 만들었고, 그 숯은 어머니의 장독에 사용되었다. 나무를 태우다 공기를 차단하면 불이 꺼지면서 나무는 숯으로 변한다. 이때 수분과 가벼운 성분은 날아가고, 나무속 탄소는 대기중으로 방출되는 대신 고체인 숯으로 남는다. 이렇게 만든 숯은 쉽게 썩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흡수되거나 저장되는 양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돌아보면 부모님의 지혜도 탄소를 불필요하게 배출하지 않으면서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이었다.

     

    다시 나의 부모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중학교 시절, 나는 방과 후 집 앞 도로에서 벼를 말리고 거둬들이는 일을 돕곤 했다. 부모님은 집 앞 도로의 검은 아스팔트가 햇볕을 잘 흡수한다는 점을 활용해 벼를 말리셨고, 이후 풍로를 이용해 쭉정이를 날려냈다. 이 전통적인 방식은 오늘날의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과 원리는 다르지 않다. 부모님은 ‘탄소’나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을 모르셨지만, 이미 자연의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 책은 탄소중립이라는 개념을 단지 현대의 과학기술 영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의 삶과 역사, 그리고 사회적 전환이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풀어내고자 한다. 결국, 탄소중립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