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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개론(9)-‘메가시티’-행정통합을 넘어 탄소경제권으로

    탄소중립개론(9)-‘메가시티’-행정통합을 넘어 탄소경제권으로

    기후위기 적합한 지역 경쟁력·경제 질서 설계… 생산적 논의 전환

    ▲메가시티 이미지.(출처=Pexels)
    ▲메가시티 이미지.(출처=Pexels)

    메가시티(Megacity) 논쟁의 배경

    최근 한국 사회에서 메가시티(Megacity) 논쟁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 수도권 집중, 행정 비효율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겹치면서 광역 지방자치단체 통합이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행정구역 재편과 권한·재정 조정에 머물러, 메가시티를 행정 규모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한계를 보여 왔다. 이에 비해 최근의 논쟁은 메가시티를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재구조화와 국가 성장 전략을 담아내는 공간 단위로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대통령의 직접적 발언과 정책 구상이다. 2025년 말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메가시티 구상을 국정 아젠다(National Agenda)로 공식 언급하며 논쟁에 정치적·전략적 무게를 실어왔다. 대통령은 충남권 타운홀 미팅(2025년 12월 5일)에서 “지역이 쪼개져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광역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추진 중인 ‘5극 3특(5개의 권역과 3개의 특별자치도)’체계와 결합해 메가시티를 국가 차원의 지방균형발전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구조 개편 논의는 곧바로 지역 단위의 구체적 구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 통합 논의는 호남권(광주·전남·전북), 부울경권(부산·울산·경남), 대경권(대구·경북)으로 이어지며, 메가시티가 개별 지역의 행정 실험이 아니라 전국적 재편의 공통 화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지역 주도 성장이 국민의 뜻”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흐름이 중앙의 일방적 설계가 아니라 지역의 요구와 공감 위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한 메시지로 읽힌다.

    메가시티 논쟁의 한계

    그러나 앞서 본것처럼 지금까지의 메가시티 논의는 주로 행정통합, 인구 규모, 생산 집적, 교통·생활권 확대와 같은 공간적·물리적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왔다. 이러한 접근은 기후위기라는 구조적 전환 국면 속에서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메가시티가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확대하는 행정·공간 전략에 머무를 경우,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무역 질서 속에서 지역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방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더 이상 생산량이나 인구 규모 같은 전통적 지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탄소 규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감축 성과를 얼마나 정밀하게 측정·보고·검증(MRV)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성과를 금융과 시장 메커니즘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기업과 지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중립개론(다누리, 2025)’에서 저자가 강조해왔듯이, 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정책의 한 영역이 아니라 산업·무역·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경제 시스템의 전환이다. 이 변화는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큰 대한민국에서 구조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전자, 기계 산업은 모두 높은 탄소 집약도를 지닌 분야이며, 이들 산업의 제품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글로벌 ESG 규범이라는 새로운 ‘그린 장벽’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감축 역량을 갖추지 못한 기업과 지역은 점차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방향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탄소는 비용 요인을 넘어 가격과 수익성을 결정하는 핵심 경제 변수로 전환되고 있다.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의 기후클럽(Climate Club) 이론

    이러한 국제 환경과 제도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이론적 틀이 윌리엄 노드하우스의 기후클럽 이론이다. 노드하우스는 기후위기 대응을 도덕적 협력의 문제로 보지 않고, 탄소가격, 관세, 시장 접근 권한을 통해 감축 참여자를 우대하고 비참여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경제적 규칙 체계로 이해했다. 이는 탄소 규제가 환경정책을 넘어, 무역과 산업 경쟁을 조직하는 핵심 제도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드하우스는 이러한 규칙 체계를 국가 간 ‘클럽’이라는 공간적 단위로 묶어 새로운 기후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하였다.

    저자 또한 ‘기후클럽의 시각에서 본 메가시티 전략’ 논문을 통해 부산·울산·경남권이라는 실제 산업 집적 지역에 기후클럽이론을 적용해 메가시티의 미래방향의 한 축으로 탄소경제권(Carbon Economic Zone)을 제시한 바가 있다. 노드하우스의 클럽 논리를 국가 내부로 가져와 메가시티를 탄소경제권의 실천 단위로 재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특정 지역 사례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의 지역 경쟁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게 한다. 탄소중립 시대의 지역 경쟁력은 중앙정부의 재정 이전이나 정책 지원의 크기보다, 메가시티 차원에서 감축을 조직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탄소경제권 구축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탄소경제권(Carbon Economic Zone)으로의 전환

    문제는 이 구조가 작동하려면 감축·배출권·에너지·산업·금융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탄소경제권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러한 결합은 개별 기초지자체나 단일 광역지자체 수준에서는 구현되기 어렵고, 초광역 산업·에너지·물류 체계를 포괄하는 메가시티 규모에서 비로소 현실성을 갖는다.

    따라서 메가시티는 단순히 더 큰 지방정부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메가시티는 공동의 탄소 규범과 감축 전략을 설계·공유하고, 이를 산업과 금융으로 연결하는 탄소경제권의 제도적 공간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인식이 공유될 때, 메가시티 논쟁은 행정 통합의 찬반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지역 경쟁력과 경제 질서를 설계하는 생산적 논의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 탄소중립강좌(7)-화석연로 대체재 ‘바이오이코노미’ 논쟁

    탄소중립강좌(7)-화석연로 대체재 ‘바이오이코노미’ 논쟁

    바이오이코노미, 화석연료 전환과정서 정교하게 관리할 핵심변수

    에너지 이미지.(출처=pexels)

    우리는 오랫동안 에너지의 출처와 한계를 묻지 않았다. 전기를 켜면 불이 들어왔고, 자동차에 연료를 넣으면 달렸다. 에너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는 적은 양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고, 비용 부담이 적으며,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자본주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에너지원으로 작동해 왔다. 국가는 이 에너지를 전제로 산업과 경제를 설계했고, 사회는 그 질서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 질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사용이 누적되면서 기후변화라는 형태로 한계가 드러났고,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전제를 흔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성장만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방식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제 관심은 화석연료 이후의 사회를 지탱할 에너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강의를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오늘의 강좌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바이오이코노미(bioeconomy)의 등장

    화석연료 이후의 에너지 체계를 둘러싼 논의가 추상적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해법을 요구받기 시작하면서,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던 자들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농업·임업·페기물 등 생물자원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바이오에너지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했고, 이후 그 논의는 경제 구조 전반을 포괄하는 바이오이코노미로 확장되었다.

    이 접근이 주목받은 이유는 직관적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성장 과정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그 탄소는 생물체 안에 저장된다. 그렇다면 그 자원을 다시 에너지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화석연료처럼 새로운 탄소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물권 안에서 순환하던 탄소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기존 탄소의 활용’이라는 인식은 바이오에너지를 탄소중립 시대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실제로 벌어진 바이오이코노미 논쟁

    바이오이코노미를 둘러싼 논쟁은 단번에 제기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심화되어 왔다. 2000년대 초반, 논쟁의 초점은 식량이었다. 옥수수와 사탕수수, 유채와 같은 작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1세대 바이오연료가 확산되면서, 식량 가격 상승과 토지 이용 변화 문제가 제기됐다. 이른바 “식량이냐 vs 에너지냐” 논쟁이다. 이 논쟁은 결국 정책으로 반영되어, 유럽연합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식량 기반 바이오연료의 비중을 제한하고, 폐기물과 부산물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바이오이코노미 논쟁의 초점은 산림으로 이동했다. 나무를 베어 태우는 산림바이오매스가 과연 재생에너지로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 것다. 이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개념이 Carbon Payback Time, 즉 탄소 회수 시간이다. 숲을 베어 에너지로 사용하면 탄소는 즉시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그 탄소가 다시 숲에 의해 흡수되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 이 시간적 간극을 탄소 회수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기후위기가 요구하는 시간표다. 탄소중립은 언젠가 균형을 맞추자는 장기적 약속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 안에 배출을 빠르게 줄여야 한다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논쟁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쟁점은 “바이오에너지를 쓸 것인가 vs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바이오자원을, 어떤 용도로, 어떤 순서로 사용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원칙이 바로 Cascade use, 즉 단게적 이용이다. ‘캐스케이드(cascade)’ 라는 말은 원래 폭포를 뜻한다. 물이 한 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을 거치며 아래로 흐르듯, 바이오이코노미에서 이 개념은 생물자원을 가치가 높은 용도에서 낮은 용도로 순차적으로 활용하자는 원칙을 의미한다. 유럽은 바이오자원을 에너지로 태우는 것을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간주한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물질로 사용해 탄소를 저장하고, 더 이상 활용이 어려워졌을 때에만 에너지로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바이오이코노미의 가능성과 한계

    바이오이코노미의 진짜 역할은 화석연료의 ‘전면 대체’가 아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지금은 한계가 있지만, 기술이 더 발전하면 바이오이코노미가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기대에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가 있다. 바이오이코노미의 역할을 제약하는 요인이 단지 기술의 미성숙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이오자원은 반드시 토지와 물, 생태계를 필요로 하고,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양에는 물리적인 상한이 존재한다. 아무리 공정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단위 면적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바이오에너지의 양을 무한히 늘릴 수는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경쟁의 구조다. 바이오자원은 에너지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식량과 생태계 보전, 토양과 수자원 관리와도 맞닿아 있다. 에너지 수요가 커질수록 이러한 영역과의 긴장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조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과도기적 문제’가 아니라, 바이오이코노미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제약이다.

    이런 한계를 외면한 채 바이오에너지를 화석연료의 ‘완전한 대체재’나 ‘만능 해법’으로 포장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환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오이코노미의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이오이코노미는 전기화가 어려운 영역, 이를테면 항공과 해운 연료, 고온이 필요한 산업공정, 화학 연료와 같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농업 부산물과 폐기물을 자원으로 전환함으로써 순환경제의 마지막 고리 기능도 수행한다.

    바이오이코노미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바이오이코노미의 채택 여부가 아니라, 활용의 범위와 조건, 그리고 우선순위다. 탄소중립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하나의 새로운 연료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바이오이코노미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주인공이 아니라하더라도, 전환 과정에서 반드시 정교하게 관리되어야할 핵심 변수다.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식하고, 과장 없이 사용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논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일 것이다.

    정복영 중앙대학교 기후경제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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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강좌(5)-할인율 ‘r’에 얽힌 탄소중립

    탄소중립강좌(5)-할인율 ‘r’에 얽힌 탄소중립

    오늘날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한 질문 하나로 압축된다. ‘지금 당장 경제·산업·사회 전반에 걸친 전환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이 성숙하고 경제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재생에너지 확대, 산업계의 감축 의무, 그리고 탄소세 도입을 둘러싼 모든 갈등은 결국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이 단순히 정치적 구호나 재정 여력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의 아주 작은 숫자 하나에 의해 구조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 숫자가 바로 오늘 공부할 ‘할인율(Discount Rate)’이다.할인율은 겉보기에 경제학의 기술적 변수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의 삶과 위험을 얼마나 중대하게 평가할 것인가를 수치로 드러낸 판단 기준이다. 할인율이 높게 설정되면 미래의 피해는 현재 시점에서 작게 평가되고, 반대로 낮게 설정되면 미래의 고통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점에서 할인율은 탄소중립 정책의 속도를 앞당길지, 아니면 늦출지를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정책 레버라 할 수 있다.이러한 판단은 경제학의 현재가치 계산을 통해 구체화 된다. 미래에 발생할 가치나 피해(FV)는 할인율(r)과 시간(t)을 고려해 PV = FV / (1 + r)^t로 환산된다. 이 수식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한 미래 피해라도 할인율이 높을수록 현재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를 기후위기 대응에 적용해 보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10년 후 어느 항만도시에서 침수 피해 100억 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방재 인프라를 구축하여 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해당 정책의 편익은 미래에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회피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선택된 할인율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연 5%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10년 뒤 100억 원의 피해는 현재 가치로 약 61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계산하에서는 정부가 61억 원을 넘는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게 되어, 대응은 쉽게 유보된다. 반대로 연 1%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같은 미래 피해의 현재 가치는 약 90억 원으로 평가되며, 조기 투자와 적극적 정책 개입이 합리적 선택으로 도출된다.

    결국 할인율은 단순한 계산상의 숫자가 아니라, 미래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불확실성과 세대 간 책임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경제학적 세계관을 함축한다. 이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해 온 대표적 인물들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니콜러스 스턴, 그리고 마틴 와이츠만의 주장을 들어보자.

    먼저,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시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는 시장 금리와 투자 수익률을 반영하여 연 3~4% 수준의 비교적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미래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부유할 것이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현재 세대가 부유한 미래 세대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후 대응 비용은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의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며, 초기에는 낮은 탄소세로 시작해 경제 성장에 맞춰 서서히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점진적 대응(Climate Policy Ramp)’이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즉 충격 없이 아주 완만하게 서서히 올라가는 Ramp 길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시스템 내포한 ‘살찐 꼬리(fat tail)’ 위험에 주목

    반면, 2006년 기념비적인 ‘스턴 보고서’를 펴낸 니콜러스 스턴(Nicholas Stern) 경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인 그는 기후변화를 단순한 투자의 문제가 아닌 ‘윤리적 계약’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단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래 세대의 행복을 할인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역설하며, 연 1.4% 수준의 매우 낮은 할인율을 적용했다. 미래의 가치를 현재와 거의 대등하게 평가하자, 기후변화의 피해액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산출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파국을 막기 위해 전 세계 GDP의 약 1~2%에 달하는 비용을 지금 당장 투자하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행동’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환경경제학계의 석학인 마틴 와이츠만(Martin Weitzman)은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며 기존 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했다. 그는 단순한 할인율 수준의 비교를 넘어, 기후 시스템이 내포한 이른바 ‘살찐 꼬리(fat tail)’ 위험에 주목했다.

    통계학의 일반적인 정규분포(종 모양 곡선)에서는 양 끝으로 갈수록 발생 확률이 0에 가깝게 줄어드는 ‘얇은 꼬리(thin tail)’를 보인다. 마치 키가 3미터인 사람이 존재할 확률이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는 기후변화의 확률 곡선은 이 꼬리 부분이 바닥에 닿지 않고 두툼하게 살찐 것처럼 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0’이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실재한다는 뜻이다. 즉 과거 데이터에 의존한 일반적인 경제 모델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파국적 재난 확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와이츠만은 예를 들어 지구 온도가 6도 이상 상승하여 문명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꼬리 위험’은 비록 발생 확률이 낮더라도 그 피해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했다. 파멸 앞에서는 비용-편익 분석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그는 기후 정책을 효율성의 관점이 아니라, 파국을 막기 위한 ‘보험(Insurance)’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결론적으로 스턴의 강력한 조기 대응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편 이러한 이론적 논쟁은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와 정책을 뒤흔들기도 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노드하우스의 논리를 빌려 3~7%의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고, 그 결과 ‘사회적 탄소 비용(SCC, Social Cost of Carbon)’을 낮게 산출하여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정당화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스턴의 윤리적 접근을 받아들여 2.5~3% 내외의 낮은 할인율을 채택했다. 이는 대규모 친환경 투자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의 강력한 경제적 근거가 되었다.

    결국 할인율은 살펴본 것처럼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현 세대의 탐욕과 미래 세대의 생존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기후 위기의 시계가 빨라지고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경고음이 커지는 지금, 세계의 지성은 점진적인 노드하우스의 해법보다는 스턴과 와이츠만의 강력한 행동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미래가 파국적인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안일한 경제 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탄소중립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할인율은 미래를 위한 책임의 숫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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