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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개론(9)-‘메가시티’-행정통합을 넘어 탄소경제권으로

    탄소중립개론(9)-‘메가시티’-행정통합을 넘어 탄소경제권으로

    기후위기 적합한 지역 경쟁력·경제 질서 설계… 생산적 논의 전환

    ▲메가시티 이미지.(출처=Pexels)
    ▲메가시티 이미지.(출처=Pexels)

    메가시티(Megacity) 논쟁의 배경

    최근 한국 사회에서 메가시티(Megacity) 논쟁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 수도권 집중, 행정 비효율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겹치면서 광역 지방자치단체 통합이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행정구역 재편과 권한·재정 조정에 머물러, 메가시티를 행정 규모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한계를 보여 왔다. 이에 비해 최근의 논쟁은 메가시티를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재구조화와 국가 성장 전략을 담아내는 공간 단위로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대통령의 직접적 발언과 정책 구상이다. 2025년 말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메가시티 구상을 국정 아젠다(National Agenda)로 공식 언급하며 논쟁에 정치적·전략적 무게를 실어왔다. 대통령은 충남권 타운홀 미팅(2025년 12월 5일)에서 “지역이 쪼개져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광역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추진 중인 ‘5극 3특(5개의 권역과 3개의 특별자치도)’체계와 결합해 메가시티를 국가 차원의 지방균형발전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구조 개편 논의는 곧바로 지역 단위의 구체적 구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 통합 논의는 호남권(광주·전남·전북), 부울경권(부산·울산·경남), 대경권(대구·경북)으로 이어지며, 메가시티가 개별 지역의 행정 실험이 아니라 전국적 재편의 공통 화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지역 주도 성장이 국민의 뜻”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흐름이 중앙의 일방적 설계가 아니라 지역의 요구와 공감 위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한 메시지로 읽힌다.

    메가시티 논쟁의 한계

    그러나 앞서 본것처럼 지금까지의 메가시티 논의는 주로 행정통합, 인구 규모, 생산 집적, 교통·생활권 확대와 같은 공간적·물리적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왔다. 이러한 접근은 기후위기라는 구조적 전환 국면 속에서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메가시티가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확대하는 행정·공간 전략에 머무를 경우,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무역 질서 속에서 지역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방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더 이상 생산량이나 인구 규모 같은 전통적 지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탄소 규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감축 성과를 얼마나 정밀하게 측정·보고·검증(MRV)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성과를 금융과 시장 메커니즘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기업과 지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중립개론(다누리, 2025)’에서 저자가 강조해왔듯이, 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정책의 한 영역이 아니라 산업·무역·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경제 시스템의 전환이다. 이 변화는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큰 대한민국에서 구조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전자, 기계 산업은 모두 높은 탄소 집약도를 지닌 분야이며, 이들 산업의 제품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글로벌 ESG 규범이라는 새로운 ‘그린 장벽’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감축 역량을 갖추지 못한 기업과 지역은 점차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방향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탄소는 비용 요인을 넘어 가격과 수익성을 결정하는 핵심 경제 변수로 전환되고 있다.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의 기후클럽(Climate Club) 이론

    이러한 국제 환경과 제도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이론적 틀이 윌리엄 노드하우스의 기후클럽 이론이다. 노드하우스는 기후위기 대응을 도덕적 협력의 문제로 보지 않고, 탄소가격, 관세, 시장 접근 권한을 통해 감축 참여자를 우대하고 비참여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경제적 규칙 체계로 이해했다. 이는 탄소 규제가 환경정책을 넘어, 무역과 산업 경쟁을 조직하는 핵심 제도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드하우스는 이러한 규칙 체계를 국가 간 ‘클럽’이라는 공간적 단위로 묶어 새로운 기후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하였다.

    저자 또한 ‘기후클럽의 시각에서 본 메가시티 전략’ 논문을 통해 부산·울산·경남권이라는 실제 산업 집적 지역에 기후클럽이론을 적용해 메가시티의 미래방향의 한 축으로 탄소경제권(Carbon Economic Zone)을 제시한 바가 있다. 노드하우스의 클럽 논리를 국가 내부로 가져와 메가시티를 탄소경제권의 실천 단위로 재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특정 지역 사례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의 지역 경쟁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게 한다. 탄소중립 시대의 지역 경쟁력은 중앙정부의 재정 이전이나 정책 지원의 크기보다, 메가시티 차원에서 감축을 조직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탄소경제권 구축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탄소경제권(Carbon Economic Zone)으로의 전환

    문제는 이 구조가 작동하려면 감축·배출권·에너지·산업·금융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탄소경제권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러한 결합은 개별 기초지자체나 단일 광역지자체 수준에서는 구현되기 어렵고, 초광역 산업·에너지·물류 체계를 포괄하는 메가시티 규모에서 비로소 현실성을 갖는다.

    따라서 메가시티는 단순히 더 큰 지방정부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메가시티는 공동의 탄소 규범과 감축 전략을 설계·공유하고, 이를 산업과 금융으로 연결하는 탄소경제권의 제도적 공간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인식이 공유될 때, 메가시티 논쟁은 행정 통합의 찬반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지역 경쟁력과 경제 질서를 설계하는 생산적 논의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 탄소중립강좌(8)-‘킬링곡선’이 주는 시사점

    탄소중립강좌(8)-‘킬링곡선’이 주는 시사점

    기후변화 대응 논의… 반드시 견고한 관측 데이터 위에 서야

    이미지 제공/ 탄소중립정책, 지구 시스템 5개 권역의 상호작용.
    이미지 제공/ 탄소중립정책, 지구 시스템 5개 권역의 상호작용.

    오늘 강좌의 주제는 킬링곡선에 관한 것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낸 그래프, 이른바 킬링곡선(Keeling Curve)은 현대 기후과학을 상징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지표다. 이 곡선은 복잡한 기후모형이나 가설이 아니라 대기 중 CO₂ 농도라는 단일 지표를 같은 방식으로 오랫동안 측정해 쌓아온 관측 결과다.

    기후모형과 가설이 기후 시스템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여러 가정과 해석에 의존하는 반면, 킬링곡선은 같은 방식으로 오랫동안 축적된 관측 자료에 기반한다. 이 곡선은 기후변화를 가능성이나 추론이 아니라, 이미 관측으로 확인된 변화로 보여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킬링곡선은 기후변화 논쟁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반박하기 어려운 과학적 증거로 기능해 왔다.

    킬링곡선의 관측은 1958년, 미국의 지구화학자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 1928–2005)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하와이의 마우나 로아 관측소(Mauna Loa Observatory)에서 대기 중 CO₂의 배경 농도(Background Concentration)를 연속적으로 측정하였다.

    마우나 로아 관측소는 해발 고도가 높고 태평양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인근 도시나 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배출가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또한 이 지역은 공기가 한쪽에 머물지 않고 순환해 대기 중 공기가 고르게 섞이는 환경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마우나 로아에서 관측되는 CO₂ 농도는 지역적 배출의 흔적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축적되는 CO₂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마우나로아의 킬링곡선.(그림=정복영 교수)
    ▲마우나로아의 킬링곡선.(그림=정복영 교수)

    위 그래프가 킬링곡선이다. 이 곡선은 CO₂ 농도가 해마다 계절에 따라 오르내리면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기적 변동과 장기적 추세가 시사하는 바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킬링곡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잠시 오르내림이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후변화가 일시적 변동이나 자연 주기의 산물이 아니라, 화석연료 연소와 산림 파괴 등 인간 활동이 누적되어 나타난 구조적 변화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다시 말해, 킬링곡선의 지속적인 상승은 “기후는 원래 변하며 인간의 영향은 분명하지 않다”는 주장을 사실상 무력화한다.

    둘째로 주목할 점은 뚜렷한 계절적 변동 패턴이다. 매년 봄을 전후해, 겨울 동안 식물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대기 중에 축적된 CO₂가 최고점에 이른다. 이후 여름이 되면 북반구에 넓게 분포한 식생이 광합성을 활발히 수행하며 CO₂를 흡수하고, 그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일시적인 감소 국면에 들어선다. 이처럼 톱니 모양의 계절적 변동 패턴은 자연의 흡수 능력이 고정된 용량과 리듬을 가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계절에 따라 반복되는 흡수와 방출은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작동하며,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CO₂의 증가 속도와 규모에는 스스로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킬링곡선의 계절적 톱니 패턴은 “자연이 알아서 흡수할 것”이라는 기대가 과학적으로 근거가 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킬링곡선에서 배워야 할 세 번째 내용은 과학적 태도다. 킬링곡선은 단발성 측정의 수치가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비와 방법을 사용해 중단 없이 이어진 관측위에서 구축되었다. 킬링곡선에 나타나는 톱니 모양의 계절 변동과, 그 위에 겹쳐진 꾸준한 상승선은 이러한 장기적·연속적 측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드러난 결과다. 다시 말해, 킬링곡선의 과학적 힘은 개별 수치의 크기보다도, 측정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나온다.

    사실 이러한 연속 관측은 자연스럽게 유지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과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었다. 찰스 데이비드 킬링이 시작한 이 관측은 그의 사후에도 중단되지 않은 채, 현재는 아들인 랄프 킬링이 중심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연구비삭감 등으로 여러 차례 관측중단의 위기를 겪었지만, 킬링 부자는 이 측정을 단기 성과를 내는 연구가 아니라 시간이 쌓일수록 의미를 갖는 기록으로 보았다. 그 결과 킬링곡선은 단순한 그래프를 넘어, 오늘날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과학적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한편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론은 미국 트럼프행정부의 재집권과 맞물러 다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과학적 반증이 나타나서가 아니라 관측 결과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킬링곡선과 같은 장기 관측 자료는 방법론적 일관성과 축적된 데이터의 양 때문에 과학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렵다. 그런 연유로 논쟁의 초점은 관측 결과 그 자체보다는 관측을 둘러싼 제도적·해석적 영역으로 이동해 왔다.

    최근의 기후변화 부정론은 과거처럼 “CO₂는 늘지 않는다”거나 “기후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보다는, 간접적인 형태, 예를 들면 연구비 삭감이나 장기 관측 프로그램의 중단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불편한 결과를 반박하기보다는, 그 결과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도록 만드는 전략에 가깝다.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논쟁은 치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논의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고한 관측 데이터 위에 서야 한다. 킬링곡선이 보여준 것은, 하나의 지표를 같은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 온 관측의 힘이 인류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였다. 이제 탄소중립은 선언이나 당위의 영역을 넘어, 무엇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정확히 측정하고 검증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연속적인 관측만이 불확실한 탄소중립의 여정에서 우리가 끝까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다.

     


    출처: https://www.co2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9

  • 탄소중립강좌(6)-환경정책의 ‘그레샴의 법칙’과 DMRV

    탄소중립강좌(6)-환경정책의 ‘그레샴의 법칙’과 DMRV

    ‘디지털측정·보고·검증’으로 대기정책 다시 실효성 회복해야

    ▲각종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내고 있는 굴뚝 이미지.(출처=Pexels)
    ▲각종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내고 있는 굴뚝 이미지.(출처=Pexels)

    겨울이 다가오면 도시는 유난히 잿빛으로 가라앉는다. 미세먼지경보 문자가 울리고, 사람들은 외출 전 습관처럼 마스크를 챙긴다. 깨끗한 공기는 더 이상 당연한 전제가 아니다.

    그만큼 대기오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환경·보건 문제다. 그럼에도 정책의 무게중심은 대기질 관리에서 기후변화 대응으로 옮겨 왔다. 오늘날 공론의 중심에는 탄소중립이 자리한 반면, 미세먼지 문제는 계절마다 되풀이되는 단기 현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오늘 강좌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다. 최근 이루어진 정책의 무게중심 이동이 과연 대기오염 문제가 충분히 해결된 결과였는지, 아니면 예산 제약이나 국제 환경 변화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선택된 전환이었는지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기오염 정책과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현재의 자원 배분 구조 속에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점검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는 대기오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한 뒤 기후정책으로 전환한 국가가 아니다. 여전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역 대기오염은 상존하고, 겨울철 미세먼지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정책의 무게중심이 기후정책으로 급속하게 이동한 이유는 예산과 행정 역량이라는 자원의 제약 속에서, 국제 협약과 통상 압력, 그리고 장기 국가 전략과 직결된 기후정책이 우선순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제 해결의 자연스러운 진화라기보다, 제약된 자원 속에서 선택된 전략적 이동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대기정책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었다. 각종 오염저감 제도는 기존 법·제도 틀 안에서 관행적으로 유지는 되었지만, 정책의 진화 동력은 약화되었다.

    대기오염 총량제는 총량 설정이 느슨해 실질적인 감축 압력을 만들지 못했고, 배출권거래제 역시 시범적 수준에 머물러 가격 신호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기오염 정책에서 성과를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하고 조정하는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감축 성과 정량적 검증 못하는 상황서, 정책 집행 책임은 절차와 이행 여부로 이동

    감축 성과를 정량적으로 검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 집행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결과가 아닌 절차와 이행 여부로 이동했다. 이는 행정적으로 확인이 용이한 장비 설치, 보급 실적이 정책 성과를 대체하는 구조를 낳았다.

    산업단지 관리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반복되고 있다. 산업단지는 수십, 수백 개 사업장이 밀집한 하나의 거대한 집합 배출원임에도, 정부의 관리 방식은 여전히 공장별·시설별 방지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데 머물러 있다.

    정책 성과는 산업단지 전체의 오염물질 감축이 아니라, 몇 개 사업장이 어떤 설비를 설치했는지로 평가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또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어렵다. 공장별로 개별 방지시설을 도입하는 방식은 중복 투자를 낳고, 단지 전체 차원의 최적 설계나 공동 처리 시스템 구축을 가로막는다. 특히 AI·디지털 기반 통합 관리 시스템은 초기 구축 비용이 크고, 개별 사업장 단위로는 투자 유인이 낮다. 정부 보조금이 단일 설비 설치에 집중될수록, 데이터 통합·플랫폼 구축·디지털 전환과 같은 기반 사업은 계속 뒤로 밀린다.

    결국 개별 공장이 법적 최소 기준만 충족하면 되는 구조에서는 산업단지 전체의 배출을 집단적으로 줄이거나, 탄소중립 로드맵에 맞춰 협력적으로 감축하는 전략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성과보다는 설치 실적과 최소 기준 충족 여부를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될 경우, 기업의 선택 역시 가장 저렴하고 형식적인 대응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면, 효과적인 기술이나 관리 방식은 외면되고 기준만 맞추는 저비용 대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통화 이론에서 차용한 ‘환경분야의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다.

    기술 혁신과 정책 진화를 가로막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개별 제도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정책 평가의 기준 자체를 전환하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 전환의 핵심에는 DMRV, 즉 Digital Measurement, Reporting and Verification(디지털측정·보고·검증)가 있다. DMRV는 무엇을 설치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줄였는지를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체계다. 국제사회는 이미 기후변화 대응을 넘어, 환경정책 전반을 측정 가능한 성과 중심 구조로 재편하고 있다. 파리협정의 투명성 체계와 EU 배출권거래제는 기후 분야에서 DMRV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대표적 사례이며, 성과를 수치로 검증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평가 기준의 전환은 기존 정책 환경에서 주변적 수단으로 취급되던 기술들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한다. 설치 여부만으로는 주목받기 어려웠던 기술도 감축 성과가 수치로 검증될 경우 정책적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회전 제한장치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불필요한 공회전을 줄이면 연료 소비가 즉각 감소하고, 그 결과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동시에 감축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감축 성과가 탄소크레딧이나 연료비 절감, 미세먼지 저감 인센티브 등으로 운전자에게 보상될 경우 정책 효과는 행동 변화로 확장된다. 공회전 감소는 정속 운행과 안정적 운전 습관으로 이어지고, 이는 추가적인 환경 성과와 함께 교통사고 위험 감소, 도로의 안전성 개선이라는 사회적 효과를 동반한다. DMRV 기반의 성과 측정과 보상이 결합될 때, 공회전 제한장치는 환경·기후·안전이라는 서로 다른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복합적 정책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기오염 문제를 충분히 해결한 뒤 기후정책으로 넘어간 사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미해결 상태로 남겨진 대기정책을 다시 제자리에 세워야 한다. 그 출발점은 측정하지 않는 정책에서, 측정하고 보상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공회전 제한장치 사례가 보여주듯,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부족한 것은 성과를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보상하는 제도적 틀이다. 환경정책의 그레샴의 법칙을 깨지 못한다면, 어떤 기술도, 어떤 선언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겨울을 앞둔 지금, 대기정책이 다시 실효성을 회복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DMRV는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책의 출발선이다.

     

  • 탄소중립강좌(5)-할인율 ‘r’에 얽힌 탄소중립

    탄소중립강좌(5)-할인율 ‘r’에 얽힌 탄소중립

    오늘날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한 질문 하나로 압축된다. ‘지금 당장 경제·산업·사회 전반에 걸친 전환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이 성숙하고 경제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재생에너지 확대, 산업계의 감축 의무, 그리고 탄소세 도입을 둘러싼 모든 갈등은 결국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이 단순히 정치적 구호나 재정 여력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의 아주 작은 숫자 하나에 의해 구조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 숫자가 바로 오늘 공부할 ‘할인율(Discount Rate)’이다.할인율은 겉보기에 경제학의 기술적 변수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의 삶과 위험을 얼마나 중대하게 평가할 것인가를 수치로 드러낸 판단 기준이다. 할인율이 높게 설정되면 미래의 피해는 현재 시점에서 작게 평가되고, 반대로 낮게 설정되면 미래의 고통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점에서 할인율은 탄소중립 정책의 속도를 앞당길지, 아니면 늦출지를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정책 레버라 할 수 있다.이러한 판단은 경제학의 현재가치 계산을 통해 구체화 된다. 미래에 발생할 가치나 피해(FV)는 할인율(r)과 시간(t)을 고려해 PV = FV / (1 + r)^t로 환산된다. 이 수식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한 미래 피해라도 할인율이 높을수록 현재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를 기후위기 대응에 적용해 보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10년 후 어느 항만도시에서 침수 피해 100억 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방재 인프라를 구축하여 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해당 정책의 편익은 미래에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회피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선택된 할인율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연 5%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10년 뒤 100억 원의 피해는 현재 가치로 약 61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계산하에서는 정부가 61억 원을 넘는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게 되어, 대응은 쉽게 유보된다. 반대로 연 1%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같은 미래 피해의 현재 가치는 약 90억 원으로 평가되며, 조기 투자와 적극적 정책 개입이 합리적 선택으로 도출된다.

    결국 할인율은 단순한 계산상의 숫자가 아니라, 미래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불확실성과 세대 간 책임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경제학적 세계관을 함축한다. 이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해 온 대표적 인물들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니콜러스 스턴, 그리고 마틴 와이츠만의 주장을 들어보자.

    먼저,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시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는 시장 금리와 투자 수익률을 반영하여 연 3~4% 수준의 비교적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미래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부유할 것이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현재 세대가 부유한 미래 세대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후 대응 비용은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의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며, 초기에는 낮은 탄소세로 시작해 경제 성장에 맞춰 서서히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점진적 대응(Climate Policy Ramp)’이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즉 충격 없이 아주 완만하게 서서히 올라가는 Ramp 길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시스템 내포한 ‘살찐 꼬리(fat tail)’ 위험에 주목

    반면, 2006년 기념비적인 ‘스턴 보고서’를 펴낸 니콜러스 스턴(Nicholas Stern) 경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인 그는 기후변화를 단순한 투자의 문제가 아닌 ‘윤리적 계약’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단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래 세대의 행복을 할인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역설하며, 연 1.4% 수준의 매우 낮은 할인율을 적용했다. 미래의 가치를 현재와 거의 대등하게 평가하자, 기후변화의 피해액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산출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파국을 막기 위해 전 세계 GDP의 약 1~2%에 달하는 비용을 지금 당장 투자하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행동’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환경경제학계의 석학인 마틴 와이츠만(Martin Weitzman)은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며 기존 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했다. 그는 단순한 할인율 수준의 비교를 넘어, 기후 시스템이 내포한 이른바 ‘살찐 꼬리(fat tail)’ 위험에 주목했다.

    통계학의 일반적인 정규분포(종 모양 곡선)에서는 양 끝으로 갈수록 발생 확률이 0에 가깝게 줄어드는 ‘얇은 꼬리(thin tail)’를 보인다. 마치 키가 3미터인 사람이 존재할 확률이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는 기후변화의 확률 곡선은 이 꼬리 부분이 바닥에 닿지 않고 두툼하게 살찐 것처럼 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0’이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실재한다는 뜻이다. 즉 과거 데이터에 의존한 일반적인 경제 모델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파국적 재난 확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와이츠만은 예를 들어 지구 온도가 6도 이상 상승하여 문명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꼬리 위험’은 비록 발생 확률이 낮더라도 그 피해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했다. 파멸 앞에서는 비용-편익 분석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그는 기후 정책을 효율성의 관점이 아니라, 파국을 막기 위한 ‘보험(Insurance)’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결론적으로 스턴의 강력한 조기 대응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편 이러한 이론적 논쟁은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와 정책을 뒤흔들기도 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노드하우스의 논리를 빌려 3~7%의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고, 그 결과 ‘사회적 탄소 비용(SCC, Social Cost of Carbon)’을 낮게 산출하여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정당화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스턴의 윤리적 접근을 받아들여 2.5~3% 내외의 낮은 할인율을 채택했다. 이는 대규모 친환경 투자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의 강력한 경제적 근거가 되었다.

    결국 할인율은 살펴본 것처럼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현 세대의 탐욕과 미래 세대의 생존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기후 위기의 시계가 빨라지고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경고음이 커지는 지금, 세계의 지성은 점진적인 노드하우스의 해법보다는 스턴과 와이츠만의 강력한 행동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미래가 파국적인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안일한 경제 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탄소중립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할인율은 미래를 위한 책임의 숫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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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강좌(4)-“탄소중립의 시대, 정작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엔 그 단어가 없다”

    탄소중립강좌(4)-“탄소중립의 시대, 정작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엔 그 단어가 없다”

    지난 강좌에서 우리는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과 ‘넷제로(Net Zero)’ 그리고 ‘기후중립(Climate Neutrality)’의 차이를 정리하며 개념을 바로 세워보았다. 이제는 정부 정책도, 기업의 ESG 보고서도, 국제회의 합의문도 모두 이 개념들을 중심에 둔다. 그런데 정작 전 세계 기후체계의 기준이 되는 파리협정에는 이 익숙한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국제협정에 왜 핵심 개념들이 빠져 있을까. 의외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질문의 답은 약 30여년 전의 교토의정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남긴 교훈

     

    1997년에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 법적 감축의무를 부과했고, 목표는 감축수치로 고정했으며, 감축 방식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그 경직성은 곧바로 정치적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미국은 산업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비준을 거부했고, 일본과 러시아는 2차 공약기간(2013~2020)에 참여하지 않았다. 교토체제는 강한 규범이 오히려 참여를 줄이는 역설을 드러냈다. 국제사회는 이후 이 실패를 뼈아프게 기억하게 되었다.

     

    ■ 파리협정의 전략, “참여를 먼저 확보하자”

     

    2015년 파리협정 협상장은 “교토의정서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강했다. 협상가들은 이 교훈을 바탕으로 더 많은 나라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1) 지나치게 구체적인 표현은 피하자.

     

    탄소중립이나 넷제로는 직관적으로 쉬운 개념 같지만 국제법에서는 복잡한 해석을 요구한다.

    어떤 온실가스를 포함할지, 상쇄를 감축으로 볼지 등 국가마다 판단이 다르다. 이런 용어를 협정문에 넣으면 해석 충돌이 생기기 쉽다. 교토체제가 바로 그러한 규범적 경직성 때문에 흔들렸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2) 감축목표는 외부가 아닌, 각국이 스스로 정하게 하자 — NDC(국가결정기여)의 탄생

     

    파리협정이 도입한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는 감축 목표를 외부가 부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국이 스스로 설정하고 이행을 책임지는 체제로 전환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각국이 자율적으로 만든 목표가 더 높은 수용성과 이행 가능성을 보인다는 점은 국제사회가 교토체제를 통해 얻은 중요한 학습이었다.

    바로 이 ‘자발성’ 중심의 설계 원리 때문에 파리협정은 처음부터 ‘탄소중립’이나 ‘기후중립’과 같은 단일한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웠다. 국가별 경제규모, 감축역량, 기술수준이 다른 상황에서 단일목표를 요구할 경우, 파리협정이 중시한 보편적 참여 원칙과 충돌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3) 특정 기체 중심 용어보다 모든 온실가스를 포괄하자

     

    ‘탄소중립’이라는 표현은 주로 이산화탄소 감축에 초점을 맞춘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파리협정이 다루는 감축 대상은 이산화탄소만이 아니라 메탄, 아산화질소, 불소계 가스까지 포함하는 모든 온실가스이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은 처음부터 ‘탄소중립’ 같은 용어를 채택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비이산화탄소(NON-CO₂) 온실가스인 메탄이나 불소계 가스의 비중이 큰 국가들에게는, 탄소중심 용어가 자국의 배출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개념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선택된 표현,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의 균형”

     

    파리협정 제4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의 균형을 달성한다.(achieve a balance between anthropogenic emissions and removals…)”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균형(balance)’이다. 이 표현은 각국의 경제 상황·감축 경로 등이 서로 다르다는 현실을 반영하여 여러 방식의 감축 조합을 허용하는 유연성을 담고 있다. “균형”이라는 말 자체가 특정 기체나 특정 수단을 지목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마다 이산화탄소, 메탄, 불소계가스 등 자국의 배출 구조에 맞는 방식으로 전체 온실가스를 조정하도록 여지를 열어 둔 것이다. 또한 ‘넷제로’처럼 특정 수치를 전제로 하거나, ‘탄소중립’처럼 이산화탄소 중심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는 용어에 비해 해석의 폭이 넓어 국가 간 이견이 발생할 위험도 자연스럽게 낮았다.

     

    ■ 이후 탄소중립·넷제로는 이렇게 국제표준이 되었다

     

    파리협정이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의 균형’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하자, 그다음 단계는 이 원칙을 얼마나, 언제까지 달성해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규정하는 일이었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2018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1.5℃ 특별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로 억제하려면 2050년경 전 세계가 넷제로에 도달해야 한다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 과학적 기준이 나오자 각국은 이를 바탕으로 2050 탄소중립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넷제로 목표를 공식 선언하며 동참했다. 결국 파리협정이 방향을 잡았고, 과학이 목표치를 정했으며, 정책과 시장이 이를 실행하게 된 것이다.

     

     

    ■ 마무리

     

    파리협정에 ‘탄소중립’이라는 용어가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종 협정의 의도에 대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일부는 파리협정이 탄소중립 또는 넷제로를 제도적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협정문 표현이 선택된 역사적·외교적 맥락을 간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가 가진 경직적 규범 구조가 국가 참여를 약화시켰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 참여 확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설계된 체제다.

     

    결국 파리협정의 용어 선택은 목표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합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조정의 산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끝).

     

     

     

     

     

  • 탄소중립개론강좌(2)-기후위기 대응의 진화

    탄소중립개론강좌(2)-기후위기 대응의 진화

    ▲이미지 제공/ 탄소중립정책, 지구 시스템 5개 권역의 상호작용.(그림=기후에너지환경부)

     

    최근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말을 일상으로 듣는다. 여름이면 불볕더위가 길어지고, 국지성 집중호우가 도시를 단숨에 마비시키며, 세계 곳곳에서는 산불과 식량 위기가 반복된다.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대량의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속도로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기후 시스템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국제 기후과학기구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탄소 배출과 온실효과가 있다. 이산화탄소는 열을 붙잡는 성질을 지니는데, 우리가 배출하는 양이 자연의 흡수 능력을 초과하면서 대기 중 탄소가 지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그 결과는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생태계, 농업, 건강, 물 관리,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적 충격으로 이어진다.

    특히 IPCC는 기후 시스템이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되돌리기 어려운 임계점(tipping point)에 다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북극 해빙이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바다가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해 온난화 속도가 가속되고, 다시는 원래의 얼음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기후 대응은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탄소 중립(Carbon Neutrality) 개념의 등장

    이러한 위기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탄소 중립이다. 탄소 중립은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자연 또는 기술을 통해 흡수·제거되는 양을 같게 만들어 대기 중 탄소 총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상태이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전 세계 국가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 가능하면 1.5℃ 이하로 유지한다는 공동 목표에 합의했다. 그러나 각국의 산업구조와 에너지 소비 수준이 크게 다르므로, 모든 나라가 당장 배출량을 급격히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은 배출과 흡수를 통해 균형을 맞춘다는 탄소 중립개념을 우선적인 목표로 채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탄소 중립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탄소 중립은 배출량을 줄이는 감축(reduction)과 흡수·상쇄(offset)를 모두 인정하는 개념이므로, 이론적으로는 감축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아도 상쇄만으로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부 기업과 국가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은 채 나무 심기 사업이나 해외 감축 사업 투자만으로 탄소 중립 달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넷제로(Net Zero) 개념으로 진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주목하게 된 개념이 바로 넷제로이다. 넷제로는 단순히 배출과 흡수의 균형을 맞추는 탄소 중립과 달리, 배출 자체를 가능한 한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을 우선 원칙으로 삼는다. 즉, 남길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잔여 배출(residual emissions)’에 대해서만 상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접근이다.

    이 개념은 2018년 IPCC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서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학적 결론이 제시되면서 명확한 국제 목표로 자리 잡았다(Limiting warming to 1.5 °C implies reaching net zero CO₂ emissions globally around 2050). 그 이후 SBTi(과학기반감축목표기구)는 기업이 넷제로를 선언하려면 전체 배출량의 약 90% 이상을 실제 감축해야 하며, 상쇄는 감축이 불가능한 잔여 배출에만 허용된다는 기준을 세웠다. 넷제로 목표는 감축이 우선이며, 상쇄는 최후의 보완 수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탄소 중립이 기후 대응의 출발점이었다면, 넷제로는 실질 감축 중심으로 전환된 다음 단계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기후 중립(Climate Neutrality)으로의 확장

    마지막으로 기후 중립은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메탄, 아산화질소 등 모든 온실가스와 기후 영향 요인을 포함하는 더 포괄적 개념이다. 탄소 중립이 ‘탄소’를 중심으로, 넷제로가 ‘감축 방식’을 강조한다면, 기후 중립은 지구 기후 시스템 전반의 균형을 복원하는 최종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기후 중립은 단순히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넘어, 기후에 영향을 주는 모든 온실가스와 기후변수의 순 영향을 0으로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단기적 감축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에너지 전환, 산업구조 개편, 생태계 복원, 기술 혁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한 장기적 목표이다.

    탄소 중립, 넷제로, 기후 중립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살펴본 것처럼 뜻과 적용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이 차이를 알아두는 것이 기후 대응을 바르게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개념을 분명히 하면 목표가 더 현실적으로 보이고, 시장과 정부 정책도 신뢰를 얻으며, 실제로 얼마나 감축했는지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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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개론강좌(1)-탄소중립개론] 강좌를 시작하며…

    탄소중립개론강좌(1)-탄소중립개론] 강좌를 시작하며…

    [탄소중립개론] 강좌를 시작하며…
     
    “기후위기는 경제위기… 감축은 산업 경쟁력 핵심 전략”

    ▲정복영 교수의 탄소중립개론 지도서.(사진=알라딘 제공)

    세계 경제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질서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폭염·홍수·산불 같은 기상이변이 농산물 가격과 물류비를 뒤흔들고,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은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적 변수가 되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탄소중립이 있다. 그것은 이제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2026년부터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탄소가 곧 무역의 비용이 되는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제품의 품질보다 ‘탄소배출량’이 새로운 경쟁 기준이 되었고, 감축정책의 수준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고 있다.

    탄소시장(ETS)은 규제시장의 신호체계로 자리 잡으며, 감축 실적이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자연자본시장(Natural Capital Market)이 결합하면서, 탄소흡수원과 생태복원, 수자원·토양의 보전 가치가 새로운 금융자산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두 시장의 탄생을 통하여 우리는 기후와 경제의 경계가 사라지고, 탄소중립은 산업전략과 무역질서를 재편하는 경제 전환의 축으로 부상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정부도 변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을 통합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며 기후대응의 전략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특히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통해 정책 집행의 컨트롤타워를 창출하고, ESG 공시강화·녹색금융 확대·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 등을 적극 추진 중이다.

    다만 현실과의 접점에서는 과제가 남아 있다. 산업계는 에너지정책의 규제 강화 우려를 제기하며, 일부 투자자들은 정책 신호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부족을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다.

    한편 국제 정세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협정 이탈과 화석연료 산업 복귀는 탄소중립을 둘러싼 국제 합의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미국이 규제 완화와 에너지 자립을 앞세우면,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나 녹색산업정책은 새로운 무역 갈등과 정책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기후정책은 이제 환경이 아닌 경제·외교·안보가 교차하는 복합 의제로 변모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후정책 결정은 오늘을 사는 세대의 이해를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의 삶까지 좌우할 것이다.

    그럼에도 탄소중립의 본질은 단순하다. 낭비를 줄이고 자원을 아끼며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는 삶의 방식, 그것이 탄소중립의 출발점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그 지혜가 있었다. 어머니의 장독대 위의 숯은 냄새를 막는 도구이자 공기 중 탄소를 고정하는 생활의 과학이었고, 아버지는 가을마다 ‘까치밥’을 남겨 새와 인간이 공존하는 순환의 질서를 지켰다. 절약과 배려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생태적 탄소중립’의 뿌리였다.

    하지만 지난 150년간 인류는 그 균형을 잃었다.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에서 420ppm을 넘어섰고, 지구 평균기온은 1.2℃ 상승했다. 이제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경제와 생존의 과제가 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해법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는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고, 디지털 MRV(Measurement·Reporting·Verification) 시스템은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검증한다. 기업은 감축 실적을 자산화하고, CCUS·재생에너지·순환경제 산업은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의 사회는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이 동시에 진화하는 ‘트윈 트랜지션(Twin Transition)’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이 자원 효율을 높이고, 블록체인과 IoT가 탄소감축의 신뢰성을 높이며,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가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탄소중립은 기술혁신과 시장혁신이 결합된 미래사회의 기본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제가 [탄소중립개론]을 집필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은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이해를 경제적 실천과 사회적 전환으로 연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곧 경제위기이며, 감축은 윤리적 선택을 넘어 산업 경쟁력의 핵심 전략이 된다.

    온실가스, CBAM, 탄소시장, ESG, 자연자본회계 같은 개념이 정책 보고서에만 머문다면, 시민과 기업, 정부는 그 의미를 공유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간극을 좁히고, 과학과 경제, 정책과 생활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제 지면을 통해 [탄소중립개론] 강좌를 연재한다. 기후변화의 과학에서 출발해 정책, 산업, 시민의 행동경제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풀어가며, 이해가 실천이 되고, 실천이 문화가 되는 전환의 여정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